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가장 낭만적이고도 비극적인 엇갈린 사랑 이야기. 천재적인 시인이자 검객이지만 거대한 코라는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평생을 그림자 속에 숨어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봐야 했던 '시라노'의 애달픈 순애보가 제라르 드빠르디유의 압도적인 연기와 함께 당신의 영혼을 울립니다.
🎬 영화 정보
[제목: 시라노 (Cyrano de Bergerac), 감독: 장 폴 라프노, 주연: 제라르 드빠르디유, 안느 브로슈, 뱅상 페레, 개봉: 1990년 (국내 비디오 출시 1991년), 등급: 중학생 이상 관람가, 장르: 시대극/로맨스/드라마, 국가: 프랑스, 러닝타임: 141분]
🔍 요약 문구
"어둠을 틈타 당신의 귓가에 내려앉았던 그 찬란한 언어들은, 평생을 당신의 그림자 밖으로 나설 수 없었던 내 영혼의 피눈물이었습니다."
📖 줄거리
17세기 중엽, 짙은 흙먼지와 귀족들의 화려한 벨벳 망토가 어지럽게 교차하는 파리의 어느 밤. 화려한 샹들리에가 불을 밝힌 부르고뉴 극장은 연극을 보기 위해 몰려든 귀족과 평민들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이 오르고 뚱뚱하고 오만한 주연 배우가 무대 중앙에 서는 순간, 객석 한구석에서 천둥 같은 호통이 떨어집니다. "내 그대에게 한 달 동안 무대에 서지 말라 명하지 않았던가!"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가스콘 지방 출신의 근위대 대장이자 파리 최고의 검객, 그리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천재적인 언어의 마술사 **시라노 드 베르쥬락(제라르 드빠르디유)**이었습니다.
그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무대에 난입하여 형편없는 연기를 펼친 배우를 내쫓고, 이에 항의하는 오만한 귀족과 즉석에서 결투를 벌입니다. 시라노는 칼을 부딪치는 그 아슬아슬하고 치명적인 순간에도 즉흥적으로 완벽한 운율의 훌륭한 발라드 시를 지어 읊조리며, 시의 마지막 구절이 끝남과 동시에 상대의 가슴에 칼끝을 찔러 넣는 경이로운 무위를 선보입니다. 군중은 그의 압도적인 기백과 예술적인 재능에 열광합니다. 하지만 군중의 환호 속에서도 시라노의 깊은 눈동자에는 지독한 우수와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는 신으로부터 세상의 모든 용기와 예술적 재능을 부여받았지만, 동시에 얼굴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거대하고 기괴한 '코'라는 가혹한 형벌을 함께 짊어지고 태어난 사내였습니다. 그 흉측한 외모는 시라노의 영혼에 깊은 열등감을 각인시켰고, 세상의 조롱에 맞서기 위해 그는 더욱 날카로운 독설과 거침없는 칼날로 스스로를 무장하며 고독한 성벽 안에 자신을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런 시라노의 메마른 심장 한가운데, 남몰래 피워 올린 단 하나의 아름다운 꽃이 있었습니다. 바로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지적이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팔촌 여동생 **록산느(안느 브로슈)**였습니다. 시라노는 록산느를 향해 불타오르는 사랑을 품고 있었지만, 자신의 흉측한 얼굴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모욕이 될 것이라는 지독한 자격지심 때문에 차마 입술을 떼지 못한 채 수많은 밤을 하얀 달빛 아래에서 눈물로 지새워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처럼 록산느가 시라노에게 비밀스러운 만남을 청해 옵니다. 혹시 그녀도 내 마음을 알아준 것은 아닐까? 밤새 부풀어 오르는 헛된 희망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시라노는 가장 깨끗한 옷을 입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를 마주합니다. 그러나 록산느의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온 이름은 시라노가 아니었습니다.
"오라버니, 저 사랑에 빠졌어요. 가스콘 근위대에 새로 들어온, 눈부시게 잘생긴 청년이랍니다. 그의 이름은 크리스티앙이에요."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시라노는 태연한 척 미소를 지으며 사랑에 빠진 소녀의 벅찬 고백을 묵묵히 들어줍니다. 심지어 거친 가스콘 근위대원들 사이에서 그 온실 속 화초 같은 청년이 다치지 않도록 지켜달라는 그녀의 잔인한 부탁마저 기꺼이 수락하고 맙니다.
부대에서 마주한 **크리스티앙(뱅상 페레)**은 록산느의 말대로 조각상처럼 빼어난 미남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문학적 소양이나 달변과는 거리가 먼, 투박하고 머리에 든 것이 없는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록산느처럼 지적이고 시를 사랑하는 여인에게 크리스티앙의 외모는 순간의 호기심을 끌 수 있을지언정, 결코 영혼을 사로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록산느의 편지를 받고 절망에 빠져 자신의 투박함을 한탄하는 크리스티앙을 보며, 시라노의 머릿속에는 기발하고도 슬픈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갑니다.
"네게 부족한 언어를 내가 주겠다. 내게 부족한 아름다운 육신을 네가 빌려다오. 우리 두 사람이 합쳐지면 완벽한 로맨틱 히어로가 탄생할 것이다."
그날부터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의 이름으로 록산느에게 사랑의 편지를 대필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편지지 위로 흘러가는 유려한 은유와 불타오르는 열정적인 문장들은, 평생을 억눌러왔던 시라노 자신의 진짜 사랑 고백이었습니다. 시라노의 피 끓는 영혼이 담긴 편지를 읽으며 록산느는 크리스티앙이 단순한 미남을 넘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영혼을 가진 시인이라고 확신하며 깊은 사랑의 늪에 빠져듭니다.
이 기묘하고도 아슬아슬한 동업의 백미는, 영화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명장면으로 꼽히는 **'발코니 씬'**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어느 어두운 밤, 록산느의 발코니 아래로 찾아간 크리스티앙은 자신의 힘으로 사랑을 고백하려다 형편없는 말솜씨로 그녀를 실망하게 하고 맙니다. 화가 난 록산느가 발코니 문을 닫고 들어가려 하자, 어둠 속에 숨어있던 시라노가 다급하게 크리스티앙을 밀어내고 자신이 대신 나섭니다. 짙은 어둠의 장막 뒤에 몸을 숨긴 채, 시라노는 처음으로 종이와 펜이 아닌 자신의 진짜 목소리로 록산느를 향해 사랑을 토해냅니다. 밤공기를 가르고 울려 퍼지는 시라노의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 별빛마저 부끄럽게 만드는 완벽하고도 황홀한 사랑의 수사학 앞에서 록산느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맙니다. 그녀는 자신이 듣고 있는 목소리의 주인이 어둠 속의 시라노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그 언어들에 취해 크리스티앙을 발코니 위로 끌어올려 열렬한 키스를 퍼붓습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언어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남자와 입을 맞추는 광경을 어둠 속에서 올려다보아야 하는 시라노. 그의 뺨 위로 흘러내리는 것은 이슬이었을까요, 아니면 찢어지는 영혼의 파편이었을까요.
결국 록산느와 크리스티앙은 시라노의 도움으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록산느를 흠모하던 권력자 기슈 백작의 분노를 사게 된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이 속한 부대는, 결혼의 단꿈을 맛볼 새도 없이 가장 끔찍하고 처절한 스페인과의 전장인 '아라스(Arras) 전투'의 최전선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포탄이 빗발치고 식량이 바닥나 병사들이 쥐를 잡아먹으며 기아와 공포에 허덕이는 참혹한 전장. 하지만 이 지옥 같은 곳에서도 시라노의 사랑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일 새벽, 적군의 포위망을 목숨을 걸고 뚫고 나가 록산느에게 크리스티앙의 이름으로 하루 두 통씩 눈물겨운 사랑의 편지를 부칩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편지들에 담긴 절절한 사랑에 완전히 매료되어 이성을 잃은 록산느가 마차를 몰고 포화가 쏟아지는 전쟁터 한가운데로 기적처럼 나타납니다. 먼지와 피로 얼룩진 크리스티앙을 마주한 록산느는 눈물을 흘리며 고백합니다. "당신의 편지가 저를 이곳으로 불렀어요. 처음엔 당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사랑했지만, 지금은 달라요. 만약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흉측한 외모를 가졌다 해도, 저는 당신의 그 아름다운 영혼(편지)을 영원히 사랑할 거예요."
그녀의 벅찬 고백은 오히려 크리스티앙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힙니다. 그는 비로소 록산느가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허울 좋은 껍데기가 아니라, 시라노의 영혼이라는 참담한 진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깊은 절망과 죄책감에 휩싸인 크리스티앙은 시라노에게 록산느에게 모든 진실을 밝히고 당당하게 사랑을 쟁취하라고 울부짖습니다. 시라노 역시 드디어 그녀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록산느에게 다가갑니다. 하지만 운명은 끝내 시라노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진실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찰나, 적군의 맹렬한 포격이 시작되고 크리스티앙은 적의 총탄에 맞아 치명상을 입고 쓰러집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가는 남편을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록산느. 시라노는 붉게 물든 크리스티앙의 품에서 그녀가 평생 간직할 아름다운 추억을 지켜주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숨이 끊어지는 크리스티앙의 귀에 대고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거짓말을 속삭입니다.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말했네. 하지만 그녀가 여전히 사랑하는 것은 오직 자네뿐이야." 크리스티앙은 안도하며 눈을 감고, 시라노는 사랑하는 여인의 환상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영원한 사랑을 전장의 참호 속에 영원히 생매장해버립니다.
그로부터 1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릅니다. 크리스티앙을 잃은 슬픔을 간직한 채 록산느는 검은 상복을 입고 고요한 수녀원에 은거하며 살아갑니다. 그녀의 가슴팍에는 죽은 크리스티앙의 피와 누군가의 눈물로 얼룩진 '마지막 편지'가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었습니다. 시라노는 늙고 병들었으며, 권력자들을 향한 타협 없는 독설과 직언 때문에 수많은 적을 둔 채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주 토요일 오후가 되면, 그는 어김없이 낡은 모자를 쓰고 수녀원의 정원을 찾아가 록산느에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녀의 유일한 말벗이 되어주는 것으로 남은 생의 의미를 찾고 있었습니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낙엽을 흩날리던 어느 토요일. 시라노의 적들이 사주한 자객이 건물 위에서 무거운 나무 기둥을 떨어뜨려 시라노의 머리를 강타하는 치명적인 테러를 가합니다. 두개골이 깨지고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시라노는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창백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록산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녀원으로 향합니다.
떨어지는 낙엽 아래서 록산느를 마주한 시라노는 죽어가는 생명의 불꽃을 억누르며 평소처럼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을 직감한 듯, 록산느가 간직한 크리스티앙의 '마지막 편지'를 한 번만 읽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석양이 지고 어둠이 짙게 깔려 글씨조차 보이지 않는 캄캄한 정원. 하지만 시라노는 편지지를 들고 막힘없이, 너무나도 애절하고 완벽한 목소리로 그 편지의 문장들을 토해내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읽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5년 전 전쟁터에서 자신이 뼈를 깎는 고통으로 써 내려갔던 자신의 심장을, 단 하나의 토씨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암송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그 익숙하고도 강렬한 목소리. 15년 전 발코니 아래에서 자신의 영혼을 완전히 훔쳐 갔던 바로 그 남자의 목소리. 록산느의 눈이 커다랗게 흔들립니다. 그녀는 마침내 지난 15년 동안 자신이 맹목적으로 사랑했던 크리스티앙의 영혼이, 수많은 편지들이, 그리고 어둠 속의 고백이 모두 눈앞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촌 오빠 시라노의 것이었음을 깨닫고 무너져 내립니다.
"어째서 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나요! 내게 흘린 그 수많은 눈물은 어떡하라고요!"
오열하는 록산느 앞에서 시라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크리스티앙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죽음의 사신이 목을 조여오는 순간, 시라노는 바닥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 허공을 향해 녹슨 칼을 뽑아 듭니다. 평생을 싸워왔던 가식, 타협, 비겁함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들을 향해 생의 마지막 검무를 펼치던 그는 결국 칼을 떨어뜨리고 록산느의 품에 쓰러집니다.
"당신들은 내게서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겠지만, 내가 신의 품으로 가져갈 단 하나의 흠집 없는 영혼의 깃장식(Panache)... 그것만은 영원히 내 것이다."
거대한 코에 가려져 평생을 거짓된 그림자 속에서 살아야 했지만, 내면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고결하고 아름다웠던 시인 시라노 드 베르쥬락. 그는 평생을 바쳐 사랑했던 단 하나의 여인 록산느의 뜨거운 눈물을 맞으며, 길고 길었던 애달픈 짝사랑의 서막을 내리고 마침내 편안한 영면의 세계로 여행을 떠납니다. 붉게 물든 가을 노을만이 그의 마지막을 찬란하게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 감상평
영화 <시라노>는 에드몽 로스탕의 고전 희곡을 가장 완벽하고 숨 막히게 영상으로 옮겨낸 한 편의 장대한 서사시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삼각관계를 다룬 로맨스를 넘어, 육체의 한계와 사회적 굴레에 갇힌 인간이 순수한 영혼과 예술(언어)을 통해 어떻게 자신을 증명하고 구원하는가를 보여주는 철학적인 마스터피스입니다.
시라노의 거대한 '코'는 단순히 우스꽝스러운 외모적 결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짊어져야만 하는 태생적인 굴레, 혹은 타인의 편견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시라노는 그 굴레에 굴복하여 숨는 대신, 세상을 향해 더욱 날카로운 시를 던지고 검을 휘두릅니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그토록 세상 앞에 당당했던 사내가, 유독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모순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사랑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되어주기로 한 시라노의 선택은 숭고한 희생인 동시에 가장 잔인한 자기 학대였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처럼 보여지는 겉모습과 화려한 이미지가 전부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시라노>가 던지는 메시지는 더욱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록산느는 처음에는 크리스티앙의 눈부신 외모(육체)에 끌렸지만, 결국 그녀의 영혼을 구속하고 15년 동안이나 수녀원에 갇히게 만든 것은 시라노의 위대한 시(영혼)였습니다. 본질(영혼)과 껍데기(외모) 사이에서 길을 잃은 인간의 어리석음, 그리고 뒤늦게 진실을 깨달았을 때 몰려오는 그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은 이 영화를 그 어떤 비극보다 깊고 진한 여운으로 물들입니다. 거친 포화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던 한 남자의 미련하리만치 고집스러운 낭만은, 계산적인 사랑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차가운 가슴을 먹먹하게 내리칩니다.
✅ 영화의 매력 포인트
🎬 인상적인 장면
마지막 수녀원 정원에서의 암송 장면은 단연코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압도적인 명장면입니다. 시력을 잃어가는 시라노가 허공을 응시하며 15년 전의 사랑을 토해내듯 읊조릴 때,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연출과 함께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록산느의 미세한 표정 변화는 관객의 심장을 찢어놓을 듯한 슬픔을 선사합니다. 검술과 시가 결합된 초반부의 극장 결투 씬 역시, 활극으로서의 쾌감과 예술적 우아함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최고의 오프닝입니다.
🎬 아쉬운 점
연극 대본을 원작으로 한 영화 특유의 방대한 대사량과 끊임없이 쏟아지는 시적인 운율(알렉상드르 격)은, 현대적인 속도감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과장되거나 피로하게 느껴질 여지가 있습니다. 극적인 상황 속에서 모든 인물들이 시를 읊듯 대화하는 연극적 허용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기까지 약간의 적응 시간이 필요합니다.
🎗️ 시대적 의의와 메시지
1990년 개봉 당시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반향을 일으키며 프랑스 영화의 르네상스를 알렸습니다. 원작자 에드몽 로스탕이 19세기 말 이 희곡을 발표했을 때,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에 지쳐있던 프랑스 대중들이 잊고 있던 '낭만주의'와 '프랑스적 기백(Panache)'에 열광했던 것과 같은 이치였습니다. 영화는 효율성과 실리를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타협하지 않는 자존심, 사랑하는 이를 위해 나의 존재마저 지워버릴 수 있는 이타적인 사랑, 그리고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지켜내고자 했던 정신의 고결함. 이 오래된 가치들이 결코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인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본질임을 스크린을 통해 웅변하고 있습니다.
🎭 주요 캐릭터 매력 분석 및 주연 배우 소개
시라노 드 베르쥬락 역 (제라르 드빠르디유 / Gérard Depardieu) 거구의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야수 같은 기백과, 상처받은 영혼을 지닌 시인의 섬세함을 완벽한 진폭으로 그려냈습니다. 그가 아닌 시라노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 데뷔 및 경력: 1960년대 데뷔 이후 수백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프랑스의 '국민 배우'로 군림해 온 거장입니다.
- 수상 및 대표작: 이 작품으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으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그린 카드>, <레 미제라블> 등 세계 영화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록산느 역 (안느 브로슈 / Anne Brochet) 지적 허영심과 눈부신 아름다움, 그리고 비극적인 진실을 마주하고 무너져 내리는 깊은 슬픔을 기품 있게 표현해 냈습니다.
- 데뷔 및 경력: 연극 무대에서 탄탄한 기본기를 다졌으며, 우아하면서도 어딘가 차가운 지성미를 갖춘 연기로 사랑받았습니다.
- 수상 및 대표작: 이 영화로 세자르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e)>에서도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크리스티앙 드 느빌레트 역 (뱅상 페레 / Vincent Perez) 완벽한 육체를 가졌으나 속이 빈 껍데기라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처연한 청년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연기했습니다.
- 데뷔 및 경력: 스위스 출신으로 프랑스 영화계의 대표적인 미남 배우로 활약했습니다.
- 대표작: <여왕 마고>, <인도차이나> 등 90년대 프랑스 대작 영화들에 단골로 출연하며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았습니다.
🎬 감독/배우 영화 뒷이야기
- 장 폴 라프노(Jean-Paul Rappeneau) 감독은 방대한 연극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기면서, 원작의 가장 큰 매력인 '12음절의 운문 대사(Alexandrine verse)'를 하나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내는 과감한 선택을 했습니다. 이는 배우들에게 엄청난 암기력과 리듬감을 요구하는 작업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영화를 한 편의 거대한 교향곡처럼 우아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착용한 거대한 '코' 특수 분장은 영화 촬영 내내 철저한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이 정교한 분장은 배우의 풍부한 표정 연기를 전혀 방해하지 않았고,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의상상과 함께 분장 부문에서도 극찬을 받았습니다.
- 이 작품은 1991년 프랑스 아카데미라 불리는 '세자르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무려 10개 부문을 싹쓸이하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우며 프랑스 영화의 자존심을 세계에 떨쳤습니다.
👥 추천 관람 대상 / 📌 한줄평 & 별점
- 추천 대상: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에 지쳐, 영혼을 뒤흔드는 깊고 묵직한 고전 문학의 정취와 지독하고 애달픈 사랑의 원형을 맛보고 싶은 분. 명배우의 소름 돋는 연기 차력을 감상하고 싶은 시네필.
- 📌 한줄평: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펜을 쥐고 자신의 심장을 잉크 삼아 써 내려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슬픈 연서(戀書).
- 별점: ★★★★★ (4.5 / 5.0)
✨ 이 영화와 함께 보면 좋은 추천작
- 시라노; 연애조작단 (Cyrano Agency, 2010): <시라노>의 모티프를 현대의 한국으로 가져와, 연애에 서툰 이들의 사랑을 대행해 주는 에이전시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웰메이드 로맨틱 코미디.
- 셰익스피어 인 러브 (Shakespeare in Love, 1998): 천재 작가가 어떻게 뮤즈를 만나 위대한 언어(로미오와 줄리엣)를 탄생시키는가를 낭만적으로 그려낸, 훌륭한 시대극이자 로맨스 명작.
- 시라노 (Cyrano, 2021): 피터 딘클리지가 주연을 맡아 뮤지컬 형식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 외모의 결함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며 원작의 슬픔을 유려한 음악으로 승화시켰습니다.
🎯 숨은 명대사 / 말한사람
"내가 록산느를 사랑할 때, 당신은 나의 영혼이었소."
- 크리스티앙 드 느빌레트 (뱅상 페레)
🖼️ 비디오테이프 정보 (VHS 이미지), [이미지를 누르시면 커져요]
비디오케이스 표지


비디오테이프 옆면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던 낡은 수녀원의 벤치, 어둠이 짙게 깔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순간에도 시라노의 머릿속에는 15년 전의 별빛과 발코니, 그리고 록산느의 숨결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 진실을 가려버리는 비정한 세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평생을 바쳐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빛나게 해 주었던 이 서글픈 시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의 가치가 무엇인지 조용히 되묻게 합니다. 서늘한 바람이 가슴을 파고드는 밤,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바이올렛빛 물안개 같은 이 아련한 낭만의 세계로 흠뻑 빠져보시기를 권합니다. 당신의 굳어버린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줄, 결코 잊을 수 없는 언어의 향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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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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